순교자 성월에...

by 김일선 posted Sep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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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풍요로움이 가득한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벌판에서”라는 시를
   암송해봅니다.

        “부러져 넘어진 한 아름 바람을 버리고
         슬픔의 무게로 뚝뚝 떨어지는 눈발속을 그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쓸쓸한 길 위에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고
         숨어서 우는 몇 날밤의 울음과 멍든 바다의 조각들이 끝없다.
         잎이 진 나무들이 눈쌓인 산길을 내려와 죽은 강물을 보고 울었다
                아! 이루어짐의 모두는 그대 곁에 없다"... (중략)

왠지 모를 외로움에 젖는 것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외로움일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진 않지만,
지난여름 폭서(暴暑)를 짊어지고 며칠간의 성지순례 겸 피정을 하기 위하여 일상을 탈출해 보았다.

조선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이름지어진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에서
전라남도 해남의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土末]마을까지 내려오면서 흘러내리는 땀을 씻어내며
머물렀던 순교의 땅 전주, 순교지로 유서 깊은 전동성당과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소로 일찍부터 중죄인들의 형장으로 사용되어오고 있었고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유혈로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는 곳! 숲정이.

말 한마디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건만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그토록 많은 교우들이
초개와 같이 세상을 버릴 수 있었던 순교자들의 굳은 신앙이 경외스러움과 함께
너무도 처절한 느낌으로 다시 가슴에 다가옵니다.

차츰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가을 벌판을 바라보며
신앙의 자유를 찾은 이 시대에 순교자 성월을 맞는 우린
어떤 지향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우리 마음의 첫째자리에 있는 것은 무엇이고 끄트머리에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에서 주님의 것은 얼마나 있는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때입니다.

주님! 우리 마음의 방향이 주님께 향해 있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