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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09:07

엠마오 이야기

조회 수 2237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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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오 이야기                      

                                                                          김용기 

 길 위에선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추욱 처진 어깨,

초점 없는 눈동자,

군중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되돌아오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유다 왕국에서 번득이는 자리 하나 차지하리라던 꿈은

너무도 어이없는 그분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참담한 현실 앞에서 화려한 추억의 잔영들은

오히려 상처만 더 깊게 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버려두고 떠났던 녹슨 어구와 그물을 찾아 손질해야 합니다.

허나 내일 먹을 빵을 염려해야 하는 것보다 더 캄캄한 건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그 길,

그분은 절망 가운데 아무도 모르게 들어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빵을 떼어 나눠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때 보았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엠마오 삼십 리 길 내내 함께해 주셨다는 것을.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난 야곱처럼,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느님을 뵌 모세처럼,

그들은 뜨거워진 가슴을 부여안고

예루살렘으로 내달았습니다.

오직 그분의 삶을 증언하고,

그분의 죽음을 증언하고,

그분의 부활을 증언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말입니다.

그 길 위엔 4월의 신록이 곱게 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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